
길고 긴 겨울의 터널을 어느새 빠져 나왔나 싶었는데 차가운 바람은 이내 옷속을 파고들며 봄이 다가오는 것을 지체하는 즈음 지리산의 정령치 노고단과 같은 산자락들은 아직 산머리에 잔설을 희끗희끗 덜어쓰고 있습니다. 노고단까지 지금은 차로 올라 갈 수 있는데 예전에는 노고단의 울퉁 불퉁 바위산을 올라야 했던 적이 있는데 정말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아랫녘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한 구례 일원을 예로부터 산수유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특히 지리산 북녘 자락 만복대와 노고단이 병풍처럼 빙 둘러싸여 봄볕이 유난히 더 따뜻한 계곡 초입에 옹기종기 들어앉은 산동마을에는 유난히 산수유꽃이 꽃구름 바다를 이룬 듯합니다. 지리산의 눈과 얼음이 한창 녹아내리는 묘봉 골짜기 물소리가 맑게 지나는 이 마을에서도 지금 산수유꽃이 한창 샛노란 물감으로 채색되는 중입니다. 마치 온 마을을 노오란 꽃구름 띠로 두른 듯합니다. 3만여 그루의 산수유가 봄볕을 다투며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는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입니다. 개미 날개만큼 작은 노란 꽃잎이 달린 산수유 꽃송이는 하나하나가 꽃뿔 난 왕관을 닮았습니다. 꽃의 느낌이 지극히 청초하고 산뜻합니다. 산수유꽃이 절정으로 피어나는 3월 중순 무렵이면 이곳 산동마을에서는 산수유축제를 펼쳐놓고 봄의 교향악을 부릅니다. 이맘때면 이끼 긴 돌가담이 고풍스럽게 에둘러 돌라 이어지는 마을 안길과 산발 곳곳이 분주해 집니다. 상춘객들은 물론이고 화가, 사진작가에 산수유 사생대회에 참여한 학생들까지 어우러져 봄을 즐기고 그려내느라 바쁘기 때문입니다. 속내 깊은 여행객들은 이녀믜 덫에 걸린 열아홉 꽃다운 여걸 백부전이 토벌대의 오랏줄에 묶여 산동망르을 뒤로 두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며 불렀다는 애절한 산동애가도 들을 수 있습니다. "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도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골을 멍든 다리 절어절어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없이 쓰러졌네 잘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 회오리 찬 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 갈길마다 눈길지며 꽃처럼 덜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없이 쓰러졌네" 가슴이 시리고 아파지는 노래가사입니다. 백부전은 위로 오빠 셋에 언니 하나를 둔 산동면 상관마을 백씨 집안의 막내였습니다. 여순사건 당시 오빠 둘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대를 이어야 한다며 막내딸 부전더러 셋째 오빠를 대신하여 희생할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하나 남은 오빠 대신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길에 산동애가를 지어 부르며 눈물로 길을 적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이해는 하지만 죽음을 향해 떠나는 그 맘이 얼마나 서글프고 힘들었을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당시에 완성된 것은 아니고 이후 구전되어 오다가 레코드판으로 나왔지만 곧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이래 저래 역사의 뒤안으로 영영 사라질 뻔했던 이 노래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산동마을에서는 홍순례 할머니가 이 노래를 가장 잘 부른다고 합니다. 운조루 안쪽 문수리 계단식 논밭 사이사이에도 산수유가 노오란 꽃 구름을 층층이 피워 높고 있는 풍광이 아늑합니다. 이 꽃이 지면 다닥다닥 열매가 맺고 여름 뙤약볕을 받아 먹는 열매는 늦가을 이면 알알이 붉은 별처럼 반짝입니다. 나라 안 절반의 산수유 열매가 이곳에서 나는데 한약재 등으로 귀하게 쓰입니다. 땅거미가 지면서 어스름이 봄꽃 정원의문을 닫는가. 해 저물녘, 섬진감이 금빛 물비늘을 잔잔히 일렁이며 순례자 되돌아가는 길에 은은히 송가를 불러주는 가 싶더니 어느새 강변 마을마다 하나둘 꽃등을 내걸고 있습니다. 어둠으로 닫힌 봄꽃 정원은 이제 곧 달이 뜨면 새옷으로 단장하고 슬며시 문을 열 것입니다. 이렇게 한바탕 꽃잔치를 벌이고 나면 이봄도 다 지날 것입니다. 남도의 꽃그늘 아래서 따라 부르는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는 애잔함이 더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