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산 자락 섬진마을(전남 광양시 다압면)의 2월은 함박눈처럼 펑펑 쏟아져 내리는 매화로 온통 하얗습니다. 여기에 때늦은 눈이라도 내리면 천지는 눈인지 매화인지 구분이 서지 않습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매화를 예찬한 시처럼 설중매가 가장 먼저 봄을 열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이곳 섬진마을입니다. 이 매화잔치는 섬진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청ㅁ실농원을 중심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무수한 매화 분재와 굵은 조선 항아리가 무려 2천여 개나 정렬되어 있는 농원 뜨락의 풍광도 보기 드문 장관입니다. 농원 뒤편의 왕대숲과 어우러져 봄햇살에 수줍은 듯 볼을 붉히고 있는 조선 항아리 속에서는 매실이 향기롭게 익어가고 있을 겁니다. 무려 12만평이 넘는 농원 곳곳에서는 사오십 년씩 묵은 매화나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는 흰색 , 홍색, 담홍색 등으로 대개는 홑겹으로 잎보다 꽃을 먼저 피워내는 봄의 전령사입니다. 이곳 사랑방에 앉아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꽃비를 그윽히 바라보며 마시는 매실차의 은은한 향은 가히 일품입니다. 농원 뒤안기로 넘어 돌아드는 순간 절로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모리밭 푸르른 이랑 위로 만개한 매화가 흰눈처럼 소담스럽게 날리고 있는 게 황홀스럽습니다. 특히 수십 년 묵은 매화나무 둥치 잔가지 끝에 피어난 몇 송이의 매화꽃 이름하여 고매는 그 고아한 매무새로 운치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매화 천국을 일군 사람은 전통식품 명인1호로 지정된 홍쌍리 님입니다. 그는 30여년 동안 일구어 온 농원에서 해마다 150톤이 넘는 매실을 따내고 있는 데다가 최고의 매실 농축액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실은 매실정, 매실환, 매실 장아찌 등등 10여 가지 건강식 품으로 나라 안팎에서 그 인기가 절정입니다. 섬진마을에서는 해마다 매화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매화축제 한마당도 펼쳐집니다. 이 잔치에 어우러든 사람들은 매실차, 매실주 시음대회 에서 얼굴에 발그레한 홍매화를 피우며 즐거워합니다. 자연스러운 매화 산책길에서 저 아랫녘으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변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입니다. 봄햇살에 넘실넘실 흘러가는 강물 너머 펼쳐지는 음모래밭 끝자락의 울울창창 대숲도 짙푸릅니다. 지금쯤 깊은 산녘 솔밭아래서는 춘란이 연초록 꽃대를 수줍게 피워올리고 있을 겁니다. 언덕 지나는 봄바람에 청아한 매화꽃 내음이 실려와 가슴속 깊이 상쾌하게 합니다. 여기서는 누구나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됩니다. 재첩잡이가 한창인 섬진강 새하얀 모래톱에 앉아 봄볕을 즐기는 사람들이 정겨워 보입니다. 섬진강변 길섶은 따라 걷다보면 민들레꽃, 제비꽃, 솜양지꽃,현호색 등리 지천으로 피어 봄날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그 가운데 제비꽃은 아마도 봄소식을 맴 먼저 전해주는 꽃일 터입니다. 꽃의 생김이 마치 병아리처럼 귀엽게 생겻다 하여 병아리 꽃이라고도 불리는 제비꽃은 그 자줏빛 꽃잎이 자수정 보석보다 아름답습니다. 문득 그 옛날 가슴앓이를 해대던 소년의 풋사람이 봄날처럼 되살아 납니다. 날마가 강가로 나와 예쁜 제비꽃잎을 골라 만든 꽃반지를 소녀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해 날마다 강물에 띄워 보내고 돌아오곤 했던 그 아스라한 추억이 새삼스럽게 가슴 아립니다. 봄볕 부신 섬진강 언덕길을 걷다 보면 조동진의 제비꽃이 흥얼거려집니다. 풀잎 사이 중심에서 꽃대가 올라와 꽃대마다 한송이씩 노랑 꽃을 피우는 민들레는 강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불립니다. 돌틈은 물론 갈라진 아스팔트 틈에서도 피고 쓰레기 더미 위에서도 핍니다. 먼지 한 줌만 있으면 어디서고 뿌리를 내리고 그 예쁜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꽃이 진 자리는 하얗고 둥근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는 데 후하고 불면 천지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민들레 홀씨를 퍼뜨립니다. 사람 사는 인정도 저렇게 퍼졌으면 좋을 봄날이었습니다. 섬진강변을 따라 앉은뱅이 봄꽃에 취해 겊다보면 화개나무터에 이릅니다. 전라도와 경산도 사람들과 물산을 아우르는 화개장터가 이웃해 있습니다. 이 강나루에는 아직도 줄나룻배가 강 이쪽 저쪽으로 사람들을 건네주느라 분주합니다.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이 뱃줄은 강이 만들어낸 경제를 예전부터 지워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화개장터에 가면 왁자지껄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합니다. 말씨조차도 전라도와 경상도 말씨가 한데 버무려져 이곳 사람들만의 색다른 말씨를 빚어냅니다. "여어이 건너 올랑가? 쪼매 기둘리시오 ~잉 내 싸게 건네 줄라니께잉" 줄배보다 앞서 강바람을 타고 건너오는 뱃사공의 목소리도 정겹습니다.